2015년 10월 둘째주 공과 -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 (삿19:1~30)

by admin posted Oct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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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

In the days of no King

(사사기 19:1~30)

 

  • 암송: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In those days Israel had no king; everyone did as he saw fit. (사사기 17:6)

 

  1. 사사기 17장부터 그 이후로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그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얼마나 악하게 타락해 있었는지 다음 본문을 찾아가며 생각해 봅시다. (19:1, 2, 15)

 

19:1 – 레위 사람이 첩을 맞이함

레위인이 첩을 데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상황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정이 되어 있었다. 레위인이 데리고 있던 첩은 그런 여인이었다.

 

19:2 – 첩이 나쁜 짓을 저지르고 도망침

이 부분은 번역본마다 약간씩 견해차이가 있다. 그래서 그저 “화가 났다 (공동번역, 표준새번역)”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나는 개역개정의 “행음했다”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원어 또한 ‘자나’라고 하는데 이는 주로 창기와 같은 직업적인 음란 행위나 그와 같은 성향의 행음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단어가 어떻게 화가났다 등으로 또한 번역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19:15 – 나그네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음

 

앞의 스토리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찾아 자신의 집이 있는 에브라임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19:10) 여부스라는 곳에 가까이 갔을 때 해가 지고있자, 레위인의 종이 주인에게 여부스 사람의 성에서 머물자고 했다. 하지만 레위인은 다른 민족의 성에서 머물수 없다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는 기브아나 라마에서 가서 머물자고 한다. (12~13절)

 

레위인은 왜 기브아나 라마에 머물기를 원했을까? (질문)

레위인의 종은 밤을 광야에서 보내면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것 같다. 그래서 마침 여부스 사람의 성을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머물기를 원했던 것이다. (여부스 성은 베냐민 지파가 정복해야만 했지만 결국 정복하지 못했던 땅이었다.) 하지만 레위인은 이방 민족의 성에서 머무는 것에 안전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인 ‘기브아’나 ‘라마’에 머물면 안전하게 머물수 있을꺼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레위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레위인 부부는 기브아 성에 도착해서 머물곳을 찾았지만 찾을수가 없었다. 해는 다 졌고 넓은 광장 같은 곳에 앉아 있었지만, 레위인 부부를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아마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한 노인이 그들 부부를 집으로 데리고 가게 되었다.

 

본래 손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또한 나그네를 사랑하고 대접하는 것은 율법의 가르침이었으며 이스라엘 또한 나그네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선대를 받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더더욱이 나그네를 잘 보살폈어야 했다. (신10:19) 게다가 레위인들은 더욱 특별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신16:14; 26:12)

 

그런데 기브아 사람들은 아주 일반적으로 이방인들도 하고 있을 법한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율법도 어기고 레위인도 무시하고 있다.

 

19:22 – 기브아 불량배들의 성적 타락

(이 부분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순화해서 표현되거나 했으면 Skip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레위인 부부가 노인의 집에서 편안히 먹고 마시고 쉬고 있을 때 갑자기 기브아 성의 불량배들을 그들에게 들이 닥쳤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개역개정)”라고 하는데 이는 그들을 강간하겠다는 얘기이다. (쉬운성경에는 강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냥 강간이 아니었다. 불량배들은 남자를 끌어내기를 원했고, 이는 그들이 동성연애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들어본 기억이 있는가?

소돔에서 이와 너무나 동일한 모습이 연출이 되었었다. 하나님은 그런 소돔의 악함에 그 도시를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시고 만다. 지금 기브아라는 성은 극도로 타락해 있는 상황인것이다. 악함의 극치에 이르러 있는 상황인 것이다.

 

19:25 – 약자에 대한 폭행과 이기심

이 시대에는 여자와 어린 아이들은 사회적 약자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여자나 어린 아이들이 손해를 보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회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옳바른 것은 전혀 아닌것이다.

 

25절 앞부분을 보면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밖으로 끌어냈다”고 한다. 억지로 끌고 나간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레위인이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첩이었다. 먼거리도 그 첩을 되찾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갔었고 그를 되찾아오기 위해 장인의 집에 여러날을 머물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던 첩을 자기 목숨을 보호하고자 억지로 잡아 끌어 나간다. 레위인의 첩을 향한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나? 참된 의미의 사랑이 아니었다.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기 위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여인은 밤새도록 능욕을 당하고 버려졌다고 한다. 이는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얘기하긴 조심스럽지만 밤새도록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27절과 28절에 나온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 비참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싶다.

 

28절에 레위인은 쓰러져있는 여인에게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라고 라고 얘기한다. 레위인은 쓰러져있는 여인을 보고 울지도 않았다. 전혀 미안해하지도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후에 분노하며 여인의 몸을 12조각을 잘라서 보내는 것 뿐이다.) 이런 모습에서 전혀 사람을 향한 사랑이 없음을 느낄수 있지 않은가?

 

  1. 이와 같은 일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최근 뉴질랜드나 한국 뉴스에서 접한 소식은 무엇이 있습니까? 함께 나눠보세요.

 

최근에 들었던 뉴스를 생각해보고 나눠보도록 해주세요.

최근 뉴스들과 아래 내용들을 참고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해보세요.

(IS, 가정폭력, 범죄, 성범죄 등 여러가지 얘기를 나눌수 있습니다.)

 

성적타락

성적 타락에 대해서는 지난주에도 나눴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서 성범죄 얘기를 들을수 있다. 어린이부터 청소년, 청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심각하게 성적으로 타락해있는지 모른다.

 

게다가 교회 안의 성적 타락은 또한 얼마나 심각한가. 한국의 경우에는 미혼 기독청년의 52%가 성관계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61.3%는 혼전 순결이 필요없다고 얘기한다고 한다. 게다가 동성애에 대해서는 어떤가? 지난주에 얘기 나눈대로 게이/레즈비언 목사가 있다. 이제는 교회에서 함부로 동성애에 대해서 얘기하기 상당히 민감하다. 미국 장로교단은 동성결혼을 인정해 많은 교회들이 재산권을 포기하고 교단을 나오고 있기 조차 한 상황이다. 성적인 부패는 심각하게 진행되어져 가고 있다.

 

이기적인 사랑만 성행함

레위인과 같이 참된 사랑이 점점 없어져가고 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만나고 헤어진다. 나에게 필요하면 만나고 싫어지면 헤어진다. 헌신도 인내도 희생도 없고 자신의 욕구만 채우기 위해서 사랑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인 사랑만이 성행을 하고 있다. 이혼률은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다.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헤어진다. 이해하고 감싸주고 용납하는 것 없이 너무나 메마른 사람들의 감정을 보게 된다.

 

가족에 대한 폭행

노인이나 레위인은 자신의 가족들을 불량배 집단에게 내어주었다. 가족 간의 폭행 또한 얼마나 심각해져가고 있는지 모른다.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우리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심각한 불화들을 얼마나 쉽게 보는가? 계속해서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약자를 향한 폭행

레위인의 첩이 약자로써 폭행에 손쉽게 넘겨진것과 같이, 세상이 악해지고 도덕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약자, 소수집단(minority)이다. 부익부 빈익빈 (rich-get-richer and the poor-get-poorer) 현상은 갈수록 극심해져가고 있다. 이제는 가난한자는 그 누구도 쉽게 가난을 벗어날수 없는 상황 가운데 가고 있다. 이부분은 사사기 시대에 비하면 좀 나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더 악해질 가능성이 참 많다.

 

불친절함

우리의 사회는 도시화되고 핵가족화 되면서 점점더 사람간의 정이 사라지고 있다. 뉴질랜드는 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지나가는 사람과 마주칠때마다 인사를 했었다. 한국과 같은 경우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상관없이 이방인이나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하나의 문화였다. 이웃사촌이라 하여 한동네에 사는 이웃끼리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 힘든 일이 있으면 손발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도와주고는 했다. 이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물질주의, 자본주의 세상 가운데 살다보니 우리가 살기 위해서 다른 가족의 아픔은 전혀 돌아볼줄 모른다.

 

너무나 놀라운 사실은 나에게 가까운 지인만 해도 입양에 대해서 심각하게 반대를 한다. 입양을 하는 아이가 어떤 DNA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족의 혈통을 망치고 우리 가정이 불행해질꺼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 이게 세상의 가치관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만 중요한것이다. 길거리에서 누가 굶어죽고 있건 상관이 없는 것이다.

 

  1. 위와 같은 일들은 어떤 때에 일어난 일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까? (19:1) 이와 같은 말씀이 또 어디 있는지 찾아보세요.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아이들이 직접 동일한 말씀을 찾아보게 해주세요.

17:6; 18:1; 21:25 등

 

이 모든 일들을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 일어난 일들인 것이다.

지난주에 나눴던 대로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왕이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이스라엘의 왕이 누구였는가?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을 때 세상은 점점 악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사사기는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 이스라엘에 왕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마찬가지인것이다.

동성애가 성행하고, 동성결혼이 교회에서도 조차 합법화 되고 사람들은 점점 잔인해져가고 사랑을 잃어가고, 약자를 향한 폭행이 자행되고 있는 이런 사회적 현상들은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당연하고, 교회에서도 조차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섬기지, 성경에서 얘기하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19세기 종교비판가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신은 인간 자신의 소망을 투영한 것’이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이것을 풀어 말하면, 인간은 자기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신’에게 자기 소원을 모두 투영하고, 이 상상속의 신을 ‘믿는다’라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고 성경에서 이래저래 말씀들을 갖다 붙혀서 정당화 시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왕이 아닌 것이다. 자신이 왕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신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대로 자기 의대로 세상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시대도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1. 자신에게 혹시 이와 같은 사사시대의 죄악들이 드러나는 부분은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세요. 자신도 모르게 폭력적이거나 무정하거나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는 부분은 없나요? (참고 롬1:24~31) 만약 그런 부분들이 있다면 왜 그럴까요? (계3:20)

 

로마서 1:24~31절까지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아이들에게 얘기해주면 좋겠습니다. (특히 29절~31절이 아이들이 적용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으면 스킵해도 괜찮습니다. 설교 때도 다루려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때로는 친구들에게 폭력적으로 대하기도,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기도 합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한번 각자 나눠보게 해주세요.

 

이런 죄악이 드러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우리에게 왕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이유인것이다. 그외에도 환경적인 원인, 타고난 성품적인 요인들도 있을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중심에 계시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인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20절이 그 얘기를 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과 삶 가운데로 영접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 우리 마음/삶의 중심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만 해놓고 우리 마음의 중심이 아닌 저기 먼 구석에 밀쳐놓은 삶은 이러한 세상의 죄악 가운데 휩쓸려 가게 되고 만다. 그런 삶을 살것인가? 아니면 참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