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둘째주 공과 - 목이 곧은 백성

by admin posted Aug 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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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곧은 백성

(출애굽기 33:1~3)

 

  • 암송: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출34:6)

 

  1. 어린 동생이나 친구가 자신이 틀림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고집을 피운적이 있지는 않은가요? 어떤 경우가 있었는지 나눠보세요. 그럴때 마음이 어떤가요?

 

오늘 공과 공부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집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나누면 하나님께서 고집이 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어떤 마음이셨을지 공감할수 있을 것입니다.

 

  1. 하나님은 모세에게 어떤 명령을 하십니까? (1절)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를 떠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맹세하여 주시기로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1.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신 ‘여기’(1절)는 어디입니까?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19장~32장)

 

시내산이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받았다. 19장부터 31장까지는 전부다 그 이야기였다. 그래서 시내산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배워나가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은 하나님께 어떻게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하는지에 대한 부분들이었다. (성막, 제사법, 안식일 등)

 

24:12~31:18절까지 모세는 40일동안 시내산에서 두개의 돌판에 하나님 말씀을 받게 된다. 그런데 32장을 보면 모세가 오랜 시간동안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안한 나머지 금고리를 모아서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애굽땅에서 구원해낸 하나님이라며 경배하게 된다.

 

  1. 하나님께서 맹세하여 주기로 한 그 땅은 어디였습니까? (창17:6~9; 참고 창12:7; 13:15; 28:13).

 

창세기 17:6~9 –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가나안 땅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여러차례 계속해서 약속을 하셨었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출3:8) 매우 풍성하고 비옥한 땅이었다는 것이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며 어떻게 하시겠다고 합니까? (2~3절)

 

2 내가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사자(천사)들을 먼저 가나안 땅으로 보내 그곳의 사람들을 쫒아내시겠다고 한다. 하지만 3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하신다. 특이한 부분인 것 같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약속을 지켜가신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과는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하신다.

 

  1. 하나님께서는 왜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하시나요? (3절, 참고 32:7~10, 14, 33~35)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나 목이 곧은 백성이라서 그들과 함께 가다가 혹여나 그들을 멸망시킬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목이 곧은 백성이란?

목이 곧은 백성이란 고집이 세다는 의미이다. (쉬운성경에는 ‘너희는 너무나 고집이 센 백성이라서’라고 번역하고 있다.) 목이 곧다라는 표현은 32:9절에도 나오는데 (목이 뻣뻣한) 이 말은 원래 농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소나 말에게 쓰이던 표현이다. 말을 잘 듣지 않는 소는 목에 힘을 주어 주인이 가려는 방향으로 따라가려 하지않는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이런 목이 곧다라는 표현이 고집스러운 모습을 얘기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어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도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의 상태가 마치 농부의 말을 듣지 않는 소나 말과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망

32:7~10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아예 못 들어가게 하려고 하셨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부패하였다고 하였고 (32:7)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모세만을 데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려고 하셨었다.

 

왜 그러셨나? 32장에서 있었던 사건이 무엇이었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32장에서 있었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40일동안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섬긴 죄악이었다. 우상숭배의 죄악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이번 한번만이 아니었다.

 

출애굽 후 광야를 지나오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평 불만하고 애굽(이집트) 땅에서 있었던 시절이 훨씬 좋았다며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여기까지 이끌고 오셨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만들어오셨나 생각해보자.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과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만들어가셨고, 요셉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며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가시고,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며 번성하게 하시고, 모세를 이끄셔서 애굽땅에서 열가지 재앙과 홍해를 건너는 사건까지. 그 모든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그 조상들을 향한 인도하심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그리고 인내하고 견디며 이스라엘을 이끌어 오셨나 싶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고작 모세가 40일간 없어졌다고 하여 금방 당황하고 우상을 섬긴다.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도 하나님은 인내하고 견뎌 오셨는데 이제와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긴다면 그 지나간 모든 시간 가운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에 그 마음을 돌이키셨다. (32:11~14절)

32:11~14절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해 하는 중보기도로 생각할수 있다. 모세의 중보기도에 하나님은 그 마음을 돌이키신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을 마치 하나님보다 더 은혜가 넘치고 Generous한 모세로 인해 하나님이 설득되는 것과 같이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온전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말도 안되는 은혜의 방법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의 구원 또한 포함된다) 하나님께서 이 가운데 이런 모습을 보이신것은 다만 온전한 공의(Righteousness)의 하나님을 보여주심에 목적이 있다. 만약에 여기서 하나님께서 죄악을 계속해서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모습만을 보여주신다면 이스라엘의 죄악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수 있겠는가?

 

그렇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너무나 큰 것이었다. 말도 안되게 큰 것이었다. 우상숭배의 죄악은 하나님께서 결단코 용납하실수 없는 너무나 큰 죄악중에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결국 우상숭배의 죄악 때문에 무너졌다.)

 

  1.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세요. 결국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34:6~7)

 

다시 33:1~3절의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 마음을 느껴보자.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으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의 약속을 계속해서 신실하게 지켜나간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수없이 하나님을 실망시킨다.

 

(이런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나 실망하셨다. 그 마음이 너무나 착잡하실수도 있고 너무 너무나 가슴이 아프실것이다. 도저히 이 죄악된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가실수가 있을까 싶다. 얼마나 마음이 쓰라리실까. 함께 가다가는 죄악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 성품으로 인해 그들이 멸망을 하게 되지나 않을까도 걱정이 된다.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계속해서 함께 가신다. (33:14~16 참고)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성품 때문이다. 34:6~7절까지를 읽어보자.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 (34:6~7)

 

  1.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우리에게도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한 모습은 없나요? 하나님은 그럼에도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나요?

 

우리 모습을 돌아보자.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인도와 인내하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목을 뻣뻣하게 하고 곧게 치켜세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너무나도 고집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이 있지는 않은가?

 

이스라엘의 문제는 우상숭배였다. 우리에게 있어서 우상숭배는 이스라엘의 때와는 다른 모습일수 있다.  우리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믿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우리에게도 여전히 우상숭배가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우상숭배란 하나님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섬기고 따르는데 심각하게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다.

 

돈, 물질, 스마트폰, 오락, 영화, 인터넷, TV등이 우상이 될수가 있다. 심지어는 친구나 가족이나 학업도 우상이 될수 있다. 잘 생각해보자. 인터넷이나 게임등에 빠져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등하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가족이나 친구를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하나님을 찾아야 할때에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때) 친구나 가족을 더 찾지는 않은지. 잘 생각해보자. 그러고 있다면 그러한 것들은 분명 우상이 될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알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없이 말씀을 하셨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경외하고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큰 능력이 되는지, 얼마나 우리를 살아있게하는지 수없이 들어왔을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고집스럽다. 고집스러운 소와 같이 농부를 거역하고 목을 뻣뻣이 해서 계속해서 내 마음대로 내가 가고싶은대로 가고 싶어한다. 이런 소의 모습 너무나 우리의 모습과 동일하지 않는가?

 

말씀을 보자, 큐티를 해야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안하는가?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기도를 안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보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수 있다고 자신하는가? 너무나 고집스럽다. 너무나 악한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이해할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크리스찬이라면 심각한 죄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은 여전히 기다리신다. 참고 인내하시고 견디시며 기다리시며 이끌고 가신다. (참고: 이것을 성도의 견인(堅忍)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고 인내하며 이끌고 가시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상태가 절대로 괜찮아서 그냥 두시는게 아니시다. 우리는 어쩌면 이스라엘의 상태처럼 하나님을 너무나도 분노하게 하는 그런 상태일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며 너무나 괴로워하시고, 가슴 아파하고, 우리의 끈질긴 고집에 마음이 너무나 착잡한 심정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기에 은혜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렇다. 계속해서 우리를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을 묵상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은혜를 우리 마음 깊이 느낄수 있었으면 좋겠다.

 

은혜는 우리를 일어나게 한다. 은혜를 깊이 느낄때 우리에게는 일어날 힘이 생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지해서 담대하게 하나님께 다시 한번 나아가자. 우리의 그 고집스러움을 꺾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나가길 소망한다.